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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적어볼까. 뭔가 떠오르다가 스스로 고개를 젓는다. 다시 떠오르고 젓고를 반복하다 보니 누가 연상된다. 마운드에서 고개를 젓는 투수가 생각났다. 내가 사인을 내고 내가 거부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투수가 포수의 사인을 거절하는 표시로 고개를 저으면 멋있어 보인다. 내 생각에 그 공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아. 나는 다르게 생각해. 내 생각이 맞고 나는 그렇게 던질 자신이 있어. 라는 뜻을 고갯짓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다가 실제 야구장에 가보면 투수와 포수의 거리가 꽤 먼 것을 알 수 있다.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투수가 포수에게 보내는 신호는 복잡하지 않다. 예 혹은 아니요. 아니요 라고 말하는 장면이 일단 멋있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은 몇 가지나 될까. 빠른공과 변화구, 변화구는 횡으로 휘거나 종으로 휘는 것. 갑자기 변하는 것과 완만하게 변하는 것. 이 모든 공을 더 빠르게 혹은 더 느리게 하여 종류를 늘인다. 위치는 어떠한가. 높이로 보면 높은 쪽, 낮은 쪽, 가운데, 타자 입장에서 몸쪽, 가운데, 바깥쪽. 조합을 구하면. 음. 아무튼 여러 가지다.
던질 수 있는 상황은 어떤가. 타석에 서있는 타자의 약점, 현재 주자의 출루 상황, 현재 경기의 진행정도, 경기의 흐름, 우리 팀 불펜 투수 형편, 아 너무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데, 포수가 어디다가 무슨 공을 던지라고 사인을 주니 나 같으면 넙죽 절하면서 던질 것 같은데. 투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멋있다.
포수의 사인은 포수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더 높은 사람한테 나올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거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 내가 이 순간의 주인공이라는 자신감이 철철 넘치니 말이다.
물론 아무나 아무 때나 고개를 젓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데뷔한 투수가 경력이 오래된 포수의 사인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투수로서 프로선수 경력도 오래된 김광현 선수도 메이저리그에서 포수의 미트만 보고 던졌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베테랑이지만 다른 나라 리그 경력은 부족하기에 보여주는 겸손함이다.
무조건 고개를 젓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받는 것은 같은 팀으로서 경기에 이기기 위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포수는 내가 던지는 공을 받아주는, 엉뚱하게 던지는 공도 몸을 던져서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투수는 포수와 포수 옆에 서 있는 상대팀 타자만을 바라보지만 포수는 우리 팀 전체를 바라보고 신경 쓴다. 그것도 무거운 장비를 둘러쓰고. 그런 생각을 하면 또 쉽게 고개를 저을 수 없겠다.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수신호와 몸짓으로만 소통을 하기란 쉽지 않다.
투수가 고개를 계속 저을 때, 포수는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상대팀에서 알아차리면 안 되므로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무언가 열심히 전달한다. 투수는 가만히 듣고 서 있을 수도 있고, 같이 글러브 마스크를 하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어떻게 전개가 되든지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수가 투수의 엉덩이를 한 번 툭 쳐주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살아보니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실력이 기본이지만 소통도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혼자서 노를 외칠 수 있는 용기.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 그리고 남들이 왜 예스라고 하는지 들으려고 하는 배려까지. 혼자 높은 곳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는 멋있지만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가 놀음은 아니지만 놀음이라면 투수 놀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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