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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이야기

야구부 활동 추억

부로(富老, Bro) 2021. 12. 18. 09:04

요즘도 1년에 한두 번 후배들의 연락을 받는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XX학번 야구부 누구인데요 혹시 XX에 하는 홈커밍데이에 오실 수 있을까요? 아 그날 다른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네요.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시간 되세요.

 

어렵게 들어간 대학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래도 무언가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겼던지 어느 날 문득 단과대 동아리 방을 찾아갔다. 요즘은 신입생부터 스펙 쌓느라 공부에 여념이 없다지만 그 시절은 당연히 동아리에 가입하고 열심히 놀고 괜히 공부하는 척 하면 왕따 당하는 시절이었다. 간신히 사귄 동기도 가입한다고 해서 나는 야구부에 가입 원서에 내 이름을 적었다.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학창시절에 체육 수업이 있는 요일이면 비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을 만큼 나는 운동을 싫어했다. 운동 신경이 워낙 없어서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였고 움직이지 않으니 몸은 점점 둔해졌다. 대학에 합격하여 기분 좋았던 까닭은 체육 수업이 없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체육 수업도 아닌데 뭐 얼마나 시키겠어, 그냥 모여서 야구나 좀 보러 다니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은 틀렸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연습을 했다. 방망이, 글러브, 야구공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미리 예약한 운동장으로 가서 기다리면 어디선가 슬금슬금 선배들이 나타났다. 그들 중 절반은 동아리방에 상주하는 선배들이고, 나머지는 운동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저 아저씨들은 누구? 하는데 대학원 선배들이라고 했다.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신 분들은 가장 바쁜 척을 했지만 가장 야구실력이 좋았다.

 

연습이라고 해야 캐치볼이나 펑고 연습이었다. 그나마 운동장 나머지 공간에서 축구시합이 있으면 펑고는 생략했다. 공을 한번 받을 때 마다 소리를 크게 질러 기합을 넣어야 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이 그러고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눈치를 챙겼다.

 

그래도 신입생이라고 대우를 받은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포지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포수라고 대답했다. “~” “운동 잘하나보네?” 이상했다. 포수가 제일 편한 포지션 아닌가? 앉아서 하잖아.

 

아니었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마스크를 쓰니 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특히 마스크를 쓰고 옆에 타자까지 서 있으면 공이 순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몇 번 허둥지둥하자 그날 처음 봤던, 덩치가 산만한 선배가 한마디 했다. “저 새끼 누구야?” 분명히 멀리서 한 이야기였는데 또렷하게 들렸다.

 

동기들이 모두 나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같이 가입한 동기 들 중에 특히 실력이 좋았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선출이었다. 선수 출신이 아니라 선수가 배출된 학교 출신이었다. 그는 키도 크고 근육질이어서 외모에서 이미 선수의 기운을 뿜었다. 선배들이 요구한 것을 척척 해 낼 때 마다 너는 운동하지 공부 왜 했냐?” 하는 칭찬이 들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참 잘했다. 그는 정식 연습이 없는 날에도 항상 야구공을 만지작 거렸고 복도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쉬는 시간에 캐치볼하자고 졸라댔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가지고 있는 힘의 반도 안 쓰는 것 같아.” 그도 틀렸다. 캐치볼이라도 몇 번하고 집에 가는 날이면 나는 어깨가 저리고 팔이 떨렸다.

 

나는 신입생을 마치고 입대했고 전역 이후에 다시 야구부에 나가지 않았다. 군에 갔다 오니 잘하던 선배들과 잘하는 후배들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 연락해주면 고맙고 이런 끈에 미련을 갖는 내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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