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나는 명예의 전당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했던 선수들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동판에 얼굴을 새기고 보존하는 일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40살이 넘은 우리 프로야구가 이제 겨우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미국의 그것은 그 자체로 멋있는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생각이 헝클어졌다. 올해 결과로 누구는 등록되고 누구는 탈락했다. 누구는 약물 경력이 있고 누구는 의심은 받았으나 물증이 없다는 이유였다. 누구는 약과 전혀 관련이 없으나 기자들과 사이가 나빴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명예도 결국 사람이 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나의 환상은 깨졌다. 작년 한 해는 우리 야구도 난리였지만 미국 야구도 난리였다. 우리는 술판이 벌어졌고 미국은 공에 이물질을 바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며칠 전에 허지웅님 칼럼을 읽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내용을 만화로 각색한 것이었는데 글자만 있는 것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었다.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에게 양보하느라 후진을 했는데 미처 장애물을 보지 못해서 차를 긁었다는 내용이었다. 왜 내가 양보했을까, 왜 뒤를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았을까, 책을 사러 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원인을 찾아 고민할수록 괴로웠다고 하였다. 해결책은 그 일은 원래 일어날 일이라 생각하고 치우는 것이다. 원인을 찾으려 해보아야 찾을 수도 없고 나만 손해라는 것이다. 사람이 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차는 고치면 그만이라며 만화는 끝났다. 나는 좀 놀랐다. 최근에 읽었던 ‘자존감 수업’에서 비슷한 내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
야구관련 명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야구 본고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개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도 있다.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니 야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들은 것 중에 재미난 것 중의 하나가 ‘형저메’이다. 형저메는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의 앞글자를 딴 준말이다. 영어처럼 우리나라도 긴 말을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다. 준말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살아남으려면 우선 어감이 좋아야 하는데 형저메는 불행하게도 입에 쫙쫙 붙는다. 불행하다고 한 이유는 이 말을 한 장본인이 억울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야구대표팀에서 당시 메이저리그 신분이었던 후배가 한국 프로야구 선배가 연습하라는 충고를 웃으면서 대꾸할 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말은 다음처럼..
글러브에 관한 일화가 몇 가지 생각났다. 우리 집에 처음 글러브가 나타난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는 마트도 없었고 마트에서 싸게 파는 글러브도 없었다. 대신 운동용품을 파는 소매상이 따로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하나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각종 트로피를 구경했다. 매장 안을 주인 모르게 들여다보면 야구 용품뿐만 아니라 줄넘기, 권투 글러브, 용수철 달린 운동기구, 아령 등이 가득했다. 쌍절곤도 본 것 같다. 저걸 들고 운동해서 일등하면 이 트로피를 주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산 것인지 아니면 동대문에서 산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방에 드러누워 테니스공을 벽에 던져 튕겨 나오면 글러브로 잡곤 했다. 글러브가 하나 뿐이니 내가 ..
맥주도 빚는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매장에서 직접 빚은 맥주를 마시고 몸 쪽에 꽉 찬 직구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해내다니 스스로 멋있어서 잠시 취했다. 마시지도 않으면서 마신 생각만으로 취하다니. ‘몸 쪽 공’은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 쪽에 가까운 공을 의미한다. ‘꽉 찼다’는 표현은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는 것이므로 결국 몸 쪽 꽉 찬 공은 결국 몸 쪽으로 바짝 붙은 스트라이크를 말한다. 몸 쪽 공은 투수에게나 타자에게나 부담스럽다. 투수입장에서 몸 쪽으로 던지다가 제구가 되지 않으면 타자를 맞히거나 가운데로 몰려서 타자에게 공략 당할 수 있다. 스트라이크 존을 수평으로 3등분하면 몸 쪽, 가운데, 바깥쪽이니, 몸 쪽을 피하려면 바깥쪽으로 향하면 될 것 같은데 꼭 ..
어깨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계속 연습하면 강해지지만 어느 순간 망가지기 때문이다. 일반인이나 운동선수나 마찬가지이다. 어깨가 망가지는 이유는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계를 갖고 있다. 나도 뛰어난 어깨를 가졌다면 투수가 되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투수의 한계는 나의 한계보다 훨씬 높지만 무한하지 않다. 그 한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끊어지든지, 부러지든지, 염증이 생기든지 하는 탈이 나고 만다. 사람이 만든 기계도 한계를 벗어날 수 없듯이, 아빠사람 엄마사람이 만든 자식사람도 벗어날 수 없다. 한계가 있다는 점은 기계와 같지만 회복의 정도는 기계와 다르다. 기계가 고장 나면 조이고 칠해보다가 정 안되면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면 되지만 사람 어깨는 그렇게 할..
만약 그때 번트를 하지 않고 강공을 선택했더라면. 만약 그때 그 선수를 트레이드 시키고 다른 선수를 받아왔더라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지만 누구나 만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인생은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나는 세 번 모두 놓쳤다. 첫 번째는 지원한 외국학교를 합격하고도 가지 않은 것이다. 장학금 제의가 없었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명목상 지원한 학교였기 때문에 포기했다. 두 번째는 나의 유학 실패를 불쌍하게 여기신 교수님의 학위 과정 입학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교수님의 분야가 나의 관심과 달랐던 탓이었다. 세 번째는 직장에서 과장님의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한 것이다. 과장님은 좋아하였으나 과장님 과에서 하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이다. 만약 그 기회 중에 하나라..
운동선수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찬성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입장을 정하여 글을 쓰는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찬성 혹은 반대 입장을 정하고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력 있게 전개해야 점수를 얻는 시험이었다. 수억 원의 FA 계약이 발표되는 요즘 시험 문제를 풀던 때가 생각났다. 근거는 흐릿하지만 나는 분명히 찬성 쪽으로 글을 썼다. 확실하게 생각나는 근거는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요즘은 몸 관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40살 가까이 현역으로 뛰는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한 팀에 한 두 명 정도로 본인의 몸 관리뿐만 아니라 실력, 인성, 팀 내 사정 등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40세가 되기 전에 은퇴를 한다. 100세까지 산다면 6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직업을..
며칠 전에 미국 농구선수 스테픈 커리가 통산 3점슛 기록을 경신하였다는 뉴스를 봤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농구에서 3점슛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야구도 처음엔 홈런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현재 우리가 아는 홈런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처음 야구경기를 할 때는 펜스가 없었다고 한다. 펜스가 없으니, 공을 멀리 쳐서 야수가 공을 다시 회수할 때까지 주자는 달릴 수 있으므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Inside the park Homerun)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다. 어디까지든 공을 쫓아야 하는 외야수를 배려한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펜스가 생겼고, 이를 넘어가는 공은 홈런으로 인정했다. 이때부터 우리가 지금 아는 홈런의 개념이 정립되었고 요즘에 홈런이라면 으레 펜스..
선동열과 최동원 중 누가 더 위대한 투수인가. 그것은 내가 죽기 전에 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이 문제를 알거나 한번쯤 고민한 사람들 모두 그러할 것이다. 사실 선수들은 이미 팬들에게 답을 준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성공한 선수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제 경쟁상대는 제 자신입니다.’ 선수가 아무리 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기준대로 줄을 새우고 비교하고 서로 자기 말이 맞다 며 다툰다. 요즘 인터넷에서 비교대상으로 가장 뜨거운 선수는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 MVP를 따낸 오타니 쇼헤이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들었다는 표를 본 적이 있다.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하여 몸만들기, 제구, 구위, 멘탈, 스피드, 인간성, 운, 변화구 등 구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