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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러브에 관한 일화가 몇 가지 생각났다.
우리 집에 처음 글러브가 나타난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당시는 마트도 없었고 마트에서 싸게 파는 글러브도 없었다. 대신 운동용품을 파는 소매상이 따로 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하나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유리창 너머로 각종 트로피를 구경했다. 매장 안을 주인 모르게 들여다보면 야구 용품뿐만 아니라 줄넘기, 권투 글러브, 용수철 달린 운동기구, 아령 등이 가득했다. 쌍절곤도 본 것 같다. 저걸 들고 운동해서 일등하면 이 트로피를 주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산 것인지 아니면 동대문에서 산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방에 드러누워 테니스공을 벽에 던져 튕겨 나오면 글러브로 잡곤 했다. 글러브가 하나 뿐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또 다른 활용을 알아냈다.
우리 집 근처에 작은아버지 댁이 있었는데 나와 나이차이가 꽤 나는 사촌동생이 있었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은 동생과 놀다가 우연히 글러브를 쩌억 벌렸다. 그랬더니 자지러지게 우는 것이 아닌가. 동생의 입장에서는 벌어진 글러브가 마치 사자나 호랑이 입처럼 보였나보다. 짓궂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동생이 오는 날마다 한 번씩 글러브를 내밀곤 했다. 차츰 정도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무서워하였고, 글러브를 들기만 해도 슬금슬금 나를 피했다. 작은어머니한테 한 소리 들을 때까지 나의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 뒤편에는 넓은 골목이 있고 그 뒤에는 공터가 있었다. 공터는 특이하게 홀로 지면에서 높았는데 동네 아이들은 그곳에서 놀지 않았다. 공터에 여기저기 바위가 있었고 사람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공터 대신 그 밑의 골목에서 놀았다. 차가 드나들 정도로 넓고 평평한 골목이 길게 늘어섰고 골목 끝은 집으로 막혀 있어서 평상시에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기서 짬뽕공이라고 부르는 고무공을 가지고 짬뽕을 하거나 와리가리를 하곤 했다. 동네에 별로 친구가 없던 나는 옥상에서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곤 했다.
하루는 옥상에 글러브를 들고 올라가 내려다보는데 골목에서 놀던 어떤 남자아이가 내려와 보라며 손짓을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는 나보다 형이었다. 내가 주춤거리자 그는 최선을 다해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거 한번 껴보고 싶다며 같이 놀자고 했다. 용기를 내서 글러브를 들고 그 형한테 갔다. 형은 글러브를 껴보더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옆에 늘어선 내 또래 아이들이 부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형처럼 보이는 낯선 상대와 이야기하는데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에 으쓱한 기분도 들었다. 글러브가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세월이 흘러 글러브를 내가 살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야구에 관심을 보여 글러브를 주문해 보았다. 집 근처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였다. 새로 산 것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일 싸구려를 사서 그런지 공을 잡는 맛이 나지 않았다. 길을 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들여야 하는지 검색할 정도의 열정은 생기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길들이지 말고 여러번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되겠지 하는 핑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몇 번 사용하지 않은 글러브는 이사를 하면서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말았다.
글러브를 주문한 곳에서 여전히 할인 광고 메일이 온다. 그때 회원가입을 한 탓이다. 여기도 코로나 때문에 힘들겠구나. 그 때 그 형은 지금도 글러브 좋아하려나? 오래된 글러브만큼 주름은 늘었는데 아직 길은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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