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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이야기

형저메

부로(富老, Bro) 2022. 1. 13. 09:15

야구관련 명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야구 본고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인데, 개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도 있다.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니 야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찾아 볼 수 있다. 내가 들은 것 중에 재미난 것 중의 하나가 형저메이다.

 

형저메는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의 앞글자를 딴 준말이다. 영어처럼 우리나라도 긴 말을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다. 준말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살아남으려면 우선 어감이 좋아야 하는데 형저메는 불행하게도 입에 쫙쫙 붙는다.

불행하다고 한 이유는 이 말을 한 장본인이 억울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야구대표팀에서 당시 메이저리그 신분이었던 후배가 한국 프로야구 선배가 연습하라는 충고를 웃으면서 대꾸할 때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말은 다음처럼 해석되었다. ‘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메이저리거인데 겨우 한국 야구에서 뛰는 네가 선배랍시고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냐로 해석되었다. 당연히 발언 당사자는 욕을 먹었다. 그는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와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는데, 특히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이말을 비꼬아서 인터넷에 비꼬는 글이 많았다.

 

발언을 했던 선수나 들은 선수는 이 말의 존재를 안다고 했다. 인터넷에 퍼진 것처럼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선배 역시 그냥 웃고 말았다는 것이 인터뷰의 내용이다. 둘 사이의 일어난 일이 어떻게 야구팬들이 모두 알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이미 한국야구에서 명언 대접을 받아도 될 지경이다.

 

한국 국적이 아닌 메이저리그는 아마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형저메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선후배 문화와 특권의식이라고 하자.

 

한국에서는 메이저리거든 수퍼 울트라 메이저리거든 일단 나보다 선배가 이야기하면 숙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래전에 도전수퍼모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20살도 안된 청년 모델들이 합숙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저마다 주민등록증을 꺼내고 형, 언니 등을 정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먼저 야구를 시작했으면 나와 같은 존재가 아니고 선배님으로 우대해야 한다. 텔레비전에서 미국대통령에게 옆집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라고 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무조건 당연하게 생각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하나,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형저메가 희화화 된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선수 본인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메이저리그에 계속 남았거나 한국에 복귀해서도 성적이 훌륭했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 말은 진짜 메이저리그라면 그래도 돼 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선배는 중요하지만 내가 깜이 되는 선수라면 무시할 수 있어, 연습도 좀 빠져도 돼. 하지만 너는 깜도 안 되는게 어디서 깝치고 있어.

 

내가 이 말을 듣고 웃는 이유는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식이 세월이 오래 흘렀는데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나는 직장에 다니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만 같은 땅에서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기에 그런가 보다. 내가 뱉은 공기는 내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저메의 주인공은 이미 은퇴했다. 본인도 이제 이말을 듣고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으리라 믿는다. 야구명언으로 남았으니 아주 긍정적으로 영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만의 명언을 쌓을 정도로 우리 야구 역사는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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