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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이야기

에이스의 조건

부로(富老, Bro) 2021. 12. 9. 05:22

에이스가 되고 싶은가. 3가지가 있어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첫 번째 믿음이다. 오늘 우리 팀 에이스가 등판하는 날이면 다른 선수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오늘은 적어도 초반에 무너지지 않겠군. 나만 잘하면 돼. 내가 열심히 치고, 달리고, 공을 잡으면 돼. 요즘 우리 에이스가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를 믿는다. 그는 우리 팀 에이스니까.

 

두 번째 소망이다. 승리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자. 어라. 오늘 컨디션이 영 별로네. 오늘도 틀렸다. , 투수가 안 바뀌네. 5회도 올라오고 6회도 올라오고. 개인 성적이 망가지는데, 최대한 이닝을 끌어주고 기회를 마련해 주는구나. 그는 승리를 하고 싶구나. 그는 간절하구나.

 

세 번째 사랑. 경기가 끝났다고 갈비를 사준다. 치킨을 돌리기도 한다. 선수생활을 통하여 쌓은 노하우나 경험도 물어보면 아낌없이 푸는구나. 그가 좋다. 그와 같은 팀에서 선수생활 하는 것이 행복하다.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는 1년에 30번 가량 선발 등판을 한다. 통계에 따르면 이 중에 컨디션이 좋은 날은 많아야 78번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5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선발 등판 일정에 맞추어 몸 상태를 집중한다고 해도 기계가 아닌 이상 항상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야구장에 출근하기 전에 아내와 다투어서 기분이 나쁘거나, 어제 승리 기념으로 먹은 야식 때문에 속이 더부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이스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몫을 한다. 경기의 초 중반을 상대팀의 기세에 말리지 않고 유리하게 이끄는 것.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일방적인 게임이 되지 않도록 꾸역꾸역 던질 수 있는 능력. 팀 전체 분위기가 처진 와중에 혼자 구해내는 아우라까지. 그것이 에이스의 조건이다.

 

나는 에이스가 아니지만 선발 투수는 맞다. 날마다 등판한다. 9시까지 무조건 경기장에 나가야 하고 언제 경기가 끝날지는 잘 모른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경기 종료가 언제 될지 모르는 게 야구와 다른 점이다.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일단 마운드에 가야하는 것은 같다. 운이 좋은 날은 그럭저럭 마무리까지 할 수 있으나 초반에 얻어터지면 그만 내려오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내일도 올라와야 하기에. 내일도 우리 팀, 상대 팀 얼굴을 봐야 한다.

 

나는 에이스를 동경한다. 그는 척척 박사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이 가고, 칭찬을 받는 것이 질투나지 않는다. 그와 함께 동참하고 싶다.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에이스가 되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다. 제일 먼저 나선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나 스스로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간절한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 답을 할 수가 없다.

 

에이스가 아니고, 에이스가 되어보지 않았으니 에이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 팀의 한 구성원일 뿐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야말로 이 팀을 이끄는 주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복잡한 생각은 없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마운드에 오르고, 연습한 대로 야구를 하는 것뿐인지.

 

에이스는 선발 투수 이상의 영역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우리가 그를 어떻게 생각할지라도 야구가 계속되는 한 누군가는 에이스라는 타이틀을 가질 것이다. 경배하라! 우리 에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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