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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는 나와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까지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적도 3년 동안 얼굴을 보면 정이 들 텐데 하물며 친구와 3년을 지냈으니 나는 참으로 복을 받았다. 훈이와 하루를 시작해서 훈이와 마무리 하는 것이 그 무렵 나의 학교생활이었다.
그는 나와 성격이 다르다. 넉살이 좋고 사교성이 있다. 그는 나의 도시락 반찬 중에 특히 오징어채 볶음을 사랑했다. 너무 맛있다며 아예 통째로 자기 밥통에 덜어가는 날도 있었다. 순간 짜증으로 달아오르다가도 어느새 입 주위에 뻘건 고추장을 묻히고 오징어를 씹으며 웃고 있는 훈이 얼굴을 보면 나도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5학년 방학 때 한국 남자들이 꼭 받는 수술을 받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훈이가 우리 집에 문병을 왔다. 문병을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훈이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는지 학교에서 배웠는지 아니면 본능으로 안 것인지 아무튼 뭔가를 들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게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고, 기억나는 것은 자기가 사온 것을 입속 가득히 넣고 씹으면서 괜찮으냐고 물었던 훈이 얼굴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비를 싫어하지만 그 시절에는 지금만큼 싫어하지 않았다. 비가 오면 집에 가다가 운동장에서 물길을 내며 놀았다. 발에 힘을 주어 모레를 밀면 길이 생기고 고여 있던 물이 흘러갔다. 멈추면 다시 다른 방향으로 길을 냈는데 다시 합칠 수도 있고 여러 갈레로 나눌 수도 있었다. 마치 우리가 강물에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신발이 젖는 것도 모르고 한참 그러고 놀았는데, 신발이 젖는 게 너무 싫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놀았으니 배를 채워야 했다. 학교 앞 시장을 가로지르며 단골 떡볶이가게를 들렀다. 떡볶이 100원치를 사면 떡을 8개 주니 둘이서 4개씩 먹고 국물을 마시면 딱 이었다. 오늘은 내가 사고 내일은 훈이가 사고. 지게에 어묵을 지고 가며 팔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훈이가 먹어보라며 사줬던 기억도 난다. 삶지도 튀기지도 않은 생 어묵이 처음이지만 맛있었다.
훈이와 나는 둘 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서로 같은 방향은 아니라서 다른 버스를 탔다.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학교에서 종일 보고, 끝나고 놀다가 간식도 같이 먹었는데 아직도 할 말이 있었던 것이 신기하다. 당연히 우리 집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도 알고 훈이 집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도 알았다.
어? 버스 왔다. 나 먼저 갈게 안녕 내일봐. 어, 그래 잘 가. 그가 총총 멀어진다. 살짝 서운한 기분이 들락 말락 하며 우리 집 가는 버스는 언제 오는 거야 초조한 찰나, 훈이가 씩 웃으며 다가왔다.
1타수 1안타! 그게 뭐야? 버스가 왔는데 안탔으니까 안타지. 한번 왔는데 한번 안탔으니 1타수 1안타다. 뭐야... 크크크. 우리는 서로 안타를 주고받았다. 먼저 가면 안타 수가 지는 거니 경쟁이었다. 서로 5타수5안타쯤은 기록해야 겨우 집에 갔는데, 먼저 친구를 보내야 뿌듯하였다. 뿌듯한 기분을 서로 느끼기 위해 마지막 남는 차례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지금 타율을 계산하면 둘 다 타격왕일 것이다.
훈이와 나는 같은 프로야구팀을 응원했다. 영화에서 친구들이 조오련과 거북이 수영시합 이야기를 했듯이 우리는 누가 누가 붙으면 누가 이긴다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 판에 내 친구가 동지라니 든든했다.
그의 너털웃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옛날처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어쩌다가 만나면 아직도 나에게 무엇을 사주려고 하고, 헤어질 때는 나를 먼저 보내려고 한다. 나는 참 복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