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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이야기

트레이드 거부권

부로(富老, Bro) 2021. 12. 8. 03:59

바야흐로 FA계약시즌이다. 올 해는 일이 느리다는 미국에서 먼저 큰 계약을 쏟아내더니 현재 미국과 한국 모두 잠잠한 상태다. 뉴스에서 보니 미국은 내년 2월까지 계약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여기 저기 소문만 나돌고 있을 뿐이다. 야구팬이라면 계약이 뻥뻥 터지는 게 재미날 테지만, 선수들은 속이 탈 터이다. 팬의 입장에서 막상 모든 계약이 끝나면 그때부터 천생 봄을 기다려야 하니 느지막이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겠다.

 

미국야구는 한국야구와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계약조건으로 트레이드 거부권을 삽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거액 연봉을 받고 FA계약을 하는 선수들이 요구하는 조건으로서 계약에 명시된 팀으로 선수 본인의 동의 없이 트레이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계약서에 명기되지만 상호 합의하에 팀명은 공개하지 않는다. 아직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이러한 계약이 이루어진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안다.

 

트레이드는 왜 거부할까? 아무리 야구가 비즈니스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갑자기 새로운 팀에 가서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선수생활을 오래하면 돌아가는 판을 어느 정도 알고 내가 선수생활을 하는 방향성과 맞는 팀과 맞지 않는 팀을 가르는 눈치도 생길 것이다. 또한 신경 쓰지 않아도 소문은 귀를 열고 들어오니 어느 팀이 어떻다더라, 어느 팀의 누구는 어떻다더라 하는 정보도 있다. 거액을 받으며 으리으리한 계약을 하는데 그 정도 요구는 누구나 하고 싶으리라.

 

나도 원치 않는 부서이동을 경험한 적 있다. 아무리 읍소를 해도 인사 담당자는 이미 자기 손을 떠났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기에 나는 그 부서에 가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해야 했다. 그때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거부하고 싶다.

 

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이 주어진다면 일단 돌아이들을 피하고 싶다. 돌이 어디에든 있듯이 돌아이들도 어디든지 있다. 돌아이들을 다 몰아내고 거울을 보면 거기 돌아이가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될 리도 없겠지만 혼자 남아 스스로 돌이 되더라도 나를 괴롭히는 돌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싶지 싫다. 돌을 솎아내는 대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아니 그냥 무서워서 피했다고 나중에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일단 피하고 싶다. 나는 돌아이들을 정상인으로 만들 힘(power)이 없고 돌아이들에게 상처받을 약한 힘(mentality)만 있다.

 

일이 많고 힘든 부서에 무조건 가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조직이 돌아가려면 어느 부서는 힘들고 어느 부서는 덜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은 인정한다. 힘든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대접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힘든 부서에 배치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그것을 오로지 나의 잘못으로 모는 것은 불합리하다. 장기를 내가 두지 않았는데, 내가 장기알이니 알아서 하라니. ()이든 왕()이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운영을 잘하라고 장기를 두는 권한을 주었는데, 막상 장기알이 놓인 후 결과는 전혀 모르겠다면 장기를 둘 자격이 없다.

 

물론 나는 선수만 해보고 코치나 감독을 해 본적이 없다. 그 입장이 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최근 어느 고용주가 쓴, 종업원이 너무 자기 잇속만을 챙기는 세태가 당황스럽고 아쉽다는 글을 읽었다. 나도 그 입장이라면 그런 글을 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계약서에 쓰자는 것이다. 여기 이렇게 쓰여 있으니 맘대로 하지 마세요. 세상이 각박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계약서에 쓴 대로 비즈니스 하는 것이 깔끔할 것이다. 야구는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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